베트남의 달랏(Da Lat)은
1600 년대에 소수민족 참족 들이 모여 사는 작은 촌락에
불과했지만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화 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에 휴양도시를 건립하자는 계획이 착수되었고 이곳은 약 1500m의 시원한 날씨가 매력이고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날씨가 덥고 습한 베트남에선 최고의 피서지 였다
그리고
프랑스 식민지 정부가 관광도시로 만들기위해 더욱 예산을 투자하면서
1916년 프랑스 식민지 정부의 후에법원에서 달랏 시 수립을 선포하며
도시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달랏시(Da Lat, Thành phố Đà Lạt타인포 달랏 / 城舖多樂)는
베트남의 렁동성의 랑비앙 고원 에 자리하고 있다.
해발 1,500m 고도에 넓이는 393.29km2, 인구는 약 15만명 내외 이고
호치민 에서 약 3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버스로 6시간 30분에서 8시간 정도 소요된다.
달랏이라는 이름은 Dat Aliis Laetitiam Aliis Temperiem→어떤사람에게는 즐거움을 어떤사람에게는 신선함을 에서
왔다는 설이 있으며, 프랑스 식민지 정부가 달랏(Đà Lạt)이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사용하였으나
실제로는 현지 소수민족인 랏족이 부르던 이름이다.
지금 베트남에는
노보텔 달랏과 소피텔 달랏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소피텔 달랏은 본래 1922년에 지어진 달랏 왕궁이었다.
달랏의 특징적인 광경은 우거진 소나무 숲과 그 사이로 난 오솔길이며,
겨울에는 트리메리골드가 피어난다.
달랏은 베트남 최후의 황제, 바오다이 의 저택으로 유명하다.
첫 번째 저택은 1940년 프랑스의 백만장자 로베르 클레망 부르제리(Robert Clément Bourgery)에
의해 지어졌는데, 1949년 바오다이 황제가 이 별장을 매입했다.
이후 1975년까지 응오딘지엠
대통령과 후임 대통령들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되었다.
두 번째 저택은 1933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총독 장두쿠 의 여름 별장으로 지어졌다.
1933년에서 1938년 사이에 지어진 세 번째 저택은 바오다이 와 가족의 거주지였다.
저택은 모두 유럽풍으로 지어졌다
프렌치 컬로니얼 시대
달랏의 역사는 주로 프렌치의 식민지로서 시작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프렌치는 베트남을 식민지로 점령하며 달랏을 마운트 보아 목재와 식민지 근대화의 중요한 지역으로 만들었습니다.
힐스테이션
프렌치 시대에 건립된 달랏은 '
힐스테이션'으로 불려, 기후와 자연 경관을 즐기기 위한 프렌치 엘리트의 휴양지로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시원한 기후와 아름다운 호수, 정원, 공원을 제공하며, 프렌치 양식의 건축물이 특징입니다.
베트남 전쟁
1950년대와 1960년대, 달랏은 베트남 전쟁의 전방지역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도시 주변의 산악 지역은 핵실험과 밀봉된 영역으로 활용되었으며, 전투와 사상자가 있었습니다.
현대
베트남 전쟁 이후, 달랏은 다시 관광지로 발전하였고, 베트남 내외에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중요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린 레마퍼링(초기 식민지 건축물 유지와 정원 조경)이 특징적으로 유지되어 있으며,
이것은 달랏을 "소리 없는 도시"로 만들었습니다.
문화와 특징
달랏은 현대적인 도시로서 산업, 농업, 관광 등 다양한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꽃과 채소 시장, 소련 기념관, 교회, 절, 그리고 다양한 문화 행사로 인해 독특한 문화와 역사적인 분위기를 제공합니다.
관광 명소
란선사원
달랏 중앙시장
쑤언 흐엉호 시 중간에 있는 호수
달랏 성 니콜라스 성당
응모언덕
바오다이 황제의 별
꼭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